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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제도는 약 2천 8백 년 전에 화산 폭발로 인해 생겨났으며, 1788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상륙함으로써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호주, 뉴질랜드 연안을 탐험하고 남극대륙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긴 항해를 마치고 타히티 섬에서 북미 쪽으로 항해하다가 우연히 하와이를 발견하였으며, 처음에는 탐험 원정을 후원한 영국 해군성의 샌드위치백작 이름을 따서 하와이를 ‘샌드위치 제도’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것이 하와이가 세계에 알려진 시초였다. 제임스 쿡 선장이 하와이를 발견하기 전까지 하와이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하와이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이 다만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질 뿐이다. 다만 서기 300-600년 또는 그 이전에 같은 태평양상의 섬인 말퀴사스 제도와 그 후 950-1200년 경 타히티에서 수많은 사람이 카누를 타고 하와이로 건너왔다는 설이 가장 믿을만한 가설로 인정되고 있다. 하와이 왕국 당시의 하와이는 여러 왕들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하와이 섬의 한 추장이었던 카메하메하(Kamehameha)가 여러 섬을 평정하고, 1795년 이래 약 백 년 간 8대에 걸쳐 왕조의 틀을 세웠다. 카메하메하 대왕은 서양의 진보된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하와이 왕국의 발전을 도모하였으며, 그의 뒤를 이은 왕들도 왕실이 앞장서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여 불과 20여 년 만에 기독교국가가 될 정도로 교세 확장을 이루었고, 근대화를 이루고 문화 예술을 발전시켰으며 1840년에는 신헌법 발표에 따라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또한 수도를 마우이섬의 라하이나(Lahaina)에서 호놀룰루로 옮기고 사회제도도 점차로 정비해 나가는 등 근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외국 노동자의 이민 원래 하와이의 최대 수입원은 포경업(捕鯨業)이었으나, 포경업이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주요산업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사탕수수 농업이었다. 사탕수수 농장이 급성장하고 하와이가 사탕수수의 주요공급지로 주목받게 됨에 따라 이에 필요한 노동력이 급증하게 되었으며, 백인 농장주들은 해외로부터 노동자를 수급하게 되었다. 중국인 노동자의 이민(1852년)을 필두로 일본 노동자들의 이민(1868)이 증가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02년 11월 고종이 노동 이민을 허락함으로써 한인 노동자들의 이민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기근으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조선 노동자들에게 하와이 이민은 일확천금의 기회로 여겨졌기 때문에, 1903년 1월 하와이에 86명의 최초의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도착한 이래 1905년까지 총 65차례에 걸쳐 7천 명이 넘는 조선 노동자들이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당시에는 동양인과 미국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금혼법이 있어 한인 노동자들은 현지인과 결혼할 수도 없고 결혼할 신부를 찾기 위해 한국을 들를 수 있는 경제적 여건도 되지 않아 중매쟁이를 통해 사진만 보고 결혼하는 ‘사진 결혼’이 행해졌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1910년부터 1924년까지 하와이로 건너간 ‘사진 신부’의 수는 약 950명 정도이다. 하와이 공화국의 건설과 미국으로의 편입 한동안 번영을 누렸던 하와이 왕조는 선교사들의 후예들에 의해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이들은 토지를 사들여 거의 모든 땅을 소유하였고, 하와이가 사탕수수의 생산지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을 배경으로 사탕수수의 최대 소비국인 미국과 결탁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왕실 측과 백인세력 사이에는 권력투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여러 왕의 교체를 거치며 중간 중간 왕권이 회복되는 국면을 맞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백인기득권층이 미 해병대의 도움으로 왕궁을 포위하고 왕실로부터 왕권포기 서명을 받아냄으로써 하와이 왕조는 막을 내리고 1894년 백인 주류의 하와이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친미 백인세력의 지배하에 있던 하와이는 1898년 스페인 미국전쟁의 발발로 그 군사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같은 해 8월 21일 합병안이 미의회를 통과했으며 그 후 1900년에 정식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1941년 12월 7일에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의 시발점이 되어 격동의 역사를 거쳤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쟁을 계기로 하와이는 더욱 유명해지고 관광의 중심지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1959년에는 미국의 50번째 주로 승격되었으며, 오늘날의 하와이는 관광산업뿐 아니라 태평양 지역의 중심지로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와이. 호놀룰루의 지리와 기후 지리 하와이는 약 2천 8백 년 전에 발생한 화산 폭발로 인해 생겨난 화산섬으로, 섬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화산 덩어리이다. 한편 빅 아일랜드(하와이 섬의 다른 말)에 있는 마우나 케아(Mauna Kea) 산은 해저와 해발 높이를 합치면 총 10,203.5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된다. 하와이 제도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미 본토로부터 약 3,862.5km 떨어져 있다. 주도(州都)인 호놀룰루는 지리적으로 북위 21:18:25, 서경 157:51:30에 위치한다. 하와이 제도는 총 137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주요 섬은 니이하우, 오아후, 하와이, 마우이, 몰로카이, 라나이, 카우아이, 카호올라웨 등 8개이다. 이 섬들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총연장 600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져 있다. 하와이 주 전체 면적은 16,729㎢로, 제주도 면적의 9배, 남한 면적의 1/6에 이fms다. 기후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하와이 섬은 1년 내내 우리나라의 초여름과 비슷한 날씨를 보이며, 산을 거쳐오는 무역풍의 영향으로 습도도 낮아 항상 선선하며 무덥게 느껴지지 않음. 또 하와이의 기후는 계절의 변화가 아주 적다고 볼 수 있는데 여름인 5월부터 10월, 그리고 겨울인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두 계절의 기온 차가 4∼5℃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호놀루루 시의 연간 강수량은 584㎜로 적은 편이며, 저녁 시간에는 가끔 스콜이 내린다. 그러나 산간 지역의 강수량은 4,699㎜로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언어 하와이는 미국의 일부이므로, 주로 영어가 통용된다. 그러나 하와이에는 아시아, 유럽 및 남아메리카 등 다양한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 원주민 어를 비롯하여, 한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여러 가지 언어도 쓰이고 있다. 영어와 함께 하와이의 공식 언어인 하와이어는 말레이폴리네시아 어족(語族) 폴리네시아 어파(語派)에 속하는 언어로, 음절이 모두 모음으로 끝나며 자음의 연속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와이어는 단 13개의 알파벳(A/E/H/I/K/L/M/N/O/P/U/W)과 '오키나(')'라고 하는 모음을 분류하는 말 쉼표로 이루어져 있다(예: Hawai'i). 하와이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로하(안녕하세요)”, “마할로 누이로아(대단히 감사합니다)” 와 같은 몇 가지 인사말만 쓰게 될 것이다. 주민 하와이의 총 인구는 121만 1,537명(2000년), 방문객을 포함한 실제 인구는 133만 4,023명으로, 1980년 이래로 약 25.6% 증가했다. 인구밀도는 1㎢ 당 약 73명 정도로, 약 80%인 87만 6,156명이 오아후 섬에 살고 있으며 가장 인구가 적은 곳은 라나이 섬(약 2,800명)이다. 카호올라웨 섬과 니이하우 섬에는 장기 거주자가 없다. 인종별로는 아시아계가 41.6%에 이르고 백인은 24.3%, 하와이 원주민은 18%에 불과하다. 인구의 빈곤층은 10.7%, 고졸 이상의 고학력자 비율은 84.6%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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